어머니

어머니

  • 자 :막심 고키리
  • 출판사 :써네스트
  • 출판년 :2011-12-24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1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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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작품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탄생 100주년 기념

『어머니』 러시아판 완역 20주년 기념 새로운 번역 새로운 해석

써네스트 출판사의 총서 『새롭게 읽는 러시아 고전』 첫 번째 책



『어머니』 탄생 100주년 기념 새로운 번역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1985년 한 출판사에서 일본어를 번역함으로써 전격적으로 대한민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에 이 책은 젊은 대학생들에게 많은 관심을 일으켰고 그런 대학생들의 관심에 힘입어 1989년에 이제는 메이저가 된 출판사에서 러시아어 판 완역본이 출판되었고, 그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당시에 한 달에 몇 천 권씩 팔렸다고 하니 지금의 시장 상황과 비교를 하더라도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음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1985년의 일어판 번역본도 1989년의 러시아어판 번역본도 몇몇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 전문 출판사임을 자임하는 도서출판 써네스트에서는 그 동안 번역되어 있는 러시아 문학을 다시 한번 현대어로 번역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총서 시리즈를 『새롭게 읽는 러시아 고전』으로 명칭 하였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책을 고르던 와중에 역자와의 인연으로 그 첫 번째 책으로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출판하게 되었다.

마침 『어머니』가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지났으며(1907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한국에 러시아어 완역판이 소개 된지도 20년이 지난 상태여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을 하였다. 게다가 요즘과 같은 시국에 우리에게 『어머니』같은 책이 다시 필요한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물론 그 반대로 80년대의 서슬 퍼런 『금서』처럼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종교적 복음서도 아닌 새로운 해석의 시도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가 세상의 빛을 본 지 한 세기가 지났다. 그간 이 소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기초한 당에 관한 소설’이라는 교조적 평가와 ‘고리키 식의 복음서’라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상반된 평가를 받아왔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90년대 첫 번째 이유로 대학가에서 새내기 필독서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당에 관한 소설에 관심을 보일 사람은 없고 더구나 뜬금없는 복음서라는 말에 귀를 기울일 사람 또한 찾기 어렵다. 비록 출간 이후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틀 안에 작품을 가두고자 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라고 해도, 또 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신성모독에 대한 빌미를 제공했다손 치더라도, 두 입장 모두 작품이 갖는 본질, 작품의 상징적 의미, 작가의 입장에 대한 당연한 이해를 외면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때가 되었다. <<어머니>>는 단 한 마디의 말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결코 단순한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블라소프의 작은 집에는 ‘엠마오로 가는 그리스도’가 묘사된 그림이 걸려 있다. 이것은 작품과 작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소설의 주인공들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그림에 대한 이해는 작품을 바르게 읽는 데 열쇠가 된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합류하여 동행하는 대목을 읽을 수 있다. 함께 길을 걸으며 예수는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준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엠마오에서 함께 식사를 마친 후에야 제자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를 알아보았다. 순간, 예수는 사라졌다. 절망 속에 빠져 있던 제자들은 이 만남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세상에 전하는 일에 몸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누가 복음 24장에 잘 묘사되어 있는데, 고리키는 소설의 1부 3장에 이를 암시하는 대목을 포함시켰다. 안드레이와 파벨의 말과 행동은 바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제자들의 그것과 닮아 있고, 결국 하늘의 축복에 이르는 길을 유추할 수 있다. 고난의 가시밭길이 끝나면 이성과 정의의 승리라는 변용된 상급이 그들을 기다린다고 믿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다음을 읽을 수 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 29) 혹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 16,17)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요한계시록 5; 9)



파벨과 안드레이, 그리고 동료들은 “죽음으로써 온 세상 사람들을 덮고 있는 어둠을 걷히게 만들” 진정한 영웅들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 17) 파벨의 신념은 그가 읽은 금서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성서에 의해서 길러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진리의 싹을 심고 그로 인해 적들로부터 짐승처럼 붙잡힌 사람들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고통 받았던 초기 기독교인들의 이야기와 공명한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들을 성인들과 동일시한다. “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리키는 파벨과 안드레이에게 기독교 교사들의 행위에 필적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그들의 길에 엠마오의 빛이 환히 비추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파벨은 사도 베드로와 닮아 있고 나호트카는 사도 안드레를 연상시킨다(안드레는 예수로부터 처음 부름을 받았고, 나호트카는 소설 속에서 첫 범죄를 정의의 이름으로 저지르게 된다).

어머니, 펠라게야 블라소바에 대해서는 많은 글들이 있어왔지만 대부분 단편적이고 편향적이다. 이를테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이념이 초로의 여인을 투쟁으로 이끌었다는 게 기본 줄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수박 겉핥기와도 같아서 닐로브나의 살아 있는 형상을 죽은 것으로 만들 뿐이다. 고리키의 구상에 따르자면, 그녀의 형상은 모성애, 삶의 창조적 원천을 상징한다. 어머니는 “새로운 사람들”이 갖춘 좋은 모든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뛰어넘는다. 어머니는 삶에 존재하는 거짓으로부터 진실을 구별한다. 사랑과 연민의 원천인 그녀의 가슴은 가장 민감한 바로미터이다. 운동에 뛰어든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최초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인류 보편을 향한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바로 그러한 과정은 바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에 대한 태도의 변화과정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랑의 질적인 변화과정에 주목하지 않고 어머니의 변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품의 제목이 새로운 시대의 영웅 파벨이 아닌 <<어머니>>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눈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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